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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 농부

내가 수경재배를 하는 이유

by Dev Aaron 2022.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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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수경재배를 시작했던건 대략 7년 전.
식물은 키우고 싶었지만, 화분과 흙에 키우는 건 왠지 그냥 싫었다.
관상용 식물도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보다는 공기 정화라던가 뭔가 그 자체로 나에게 도움이 되는 식물을 키우고 싶었다.

그러다 수경재배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신박하게도 흙 없이 식물을 키우는 것이었다.
보통 수경재배로 상추와 같은 잎 채소류를 많이 키우는 것도 알게 되었고,
더 나아가 어류 양식과도 연계할 수 있는 아쿠아포닉스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식물 재배는 커녕 관상용 식물도 키워본 적이 없기에 우선 시중에서 어느 정도 완성된 제품을 가지고 수경재배를 시작해봤다.
파종하고 재배가 되기는 했지만... 문제는 수요였다.
당시에는 혼자 살았고, 삼시세끼를 회사에서 모두 해결하다 보니 상추를 먹을 일이 없었다.
수요가 없는 공급이 무슨 소용인가..
결국 한번 제배해보고 구석에 처박아두다 최근 다시 꺼내 시작했다.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혼자가 아니고, 집에서 식사하는 일이 대부분이고, 나 말고도 상추를 소비할 입들이 늘었다.
사실 수경재배를 다시 시작하게 된 계기는 내부보다는 외부적인 요인 때문이었다.

기후 변화, 코로나, 우-러 전쟁은 저 멀리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 아니었다.
기후 변화로 비가 안내리던 곳에 홍수가 나고, 비가 오던 곳은 가뭄이 일어났다.
코로나로 공급망이 붕괴되고, 원자재와 식량 안보 중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러 전쟁은 그것을 더 강화시켰고,
미-중 갈등 역시 심화되며 세상은 점점 극으로 치닫고 있다.

악재란 악재는 다 겹쳤고, 이러한 정세는 왠지 일시적이지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어떤 한명의 수퍼 히어로가 나타나 해결해줄 수 있는 수준의 문제 같지도 않다.

우리 나라는 자원이 없는 것으로 유명한데, 요즘 화두가 되는 에너지와 식량 모두 자립도가 매우 낮다.

이런 악재들 속에 내가 기여할 수 있는게 없을까 고민했지만... 딱히 없었다.
그저 덜 소비하고, 아껴 쓰고, 적게 먹고, 뭐 그런 것 뿐이다.
안드로이드 앱 개발로는 탄소 감소, 공급망 개선을 할 만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길은 그런 활동을 하는 기업에 안드로이드 개발자로 취업하는 것 정도랄까...?)

너무 크게 보는 것은 그만 두고 대신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봤다.
그리고 시작한 것이 수경재배이다.

수경재배는 장점이 참 많은 재배 방식이다.
* 흙에서 키우는 것이 아니기에 병충해나 잡초가 없어 농약을 쳐야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없다.
* 물 역시 땅속에 스며 들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조에서 계속 순환 시키기에 자연에서 키우는 것보다 훨씬 적은 양의 물로도 재배가 가능하다.
* 적층형으로 재배하기 때문에 땅을 매우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보통 한 층 정도 높이에 4단으로 재배하므로 4배나 효율적인데 이를 여러 층으로 재배한다고 생각하면 기하급수적으로 땅의 면적을 아낄 수 있다. 상상해보라 1만평의 땅에서 재배하던 것을 단 1천평 땅에 10층짜리 건물을 올리고, 나머지 9천평에 숲이 울창한 녹지 공원을 조성하면 어떨지.

* 모든 환경을 실내에서 제어하기 때문에 1년 365일 재배가 가능하며, 품질이나 생산량을 항상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많은 장점 뒤엔 큰 단점도 있다.

바로 돈이다.
* 식물 공장 건물을 올리는 것도 돈
* 일정한 온습도와 광량을 제공하기 위한 설비 시설 및 유지비

이러한 부분때문에 실제로 수경재배 상추를 상업화하는 곳이 그리 많지는 않다.
현재로서는 수지 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삼같은 고부가 가치가 큰 작물을 재배하거나 아쿠아포닉스를 연계하여 양식장을 같이 하거나 하는 식으로 운영한다고 한다.

첫 테스트베드로 제일 키우기 쉬운 상추를 선택했고, 시작 87일차인 지금 상추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자급자족 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아... 하지만 혹독한 겨울을 견딜지는 모르겠다.)

우선은 상추와 생장 조건이 비슷한 잎 채소 위주로 작물을 하나 씩 늘려볼 계획이며
궁극적으로는 식량 자급자족이 목표다.
아마 식량 완전 자급자족하려면 좀 넓은 부지에 전원 주택 삶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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